| 설날이나 추석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음식, 바로 한과입니다. 고운 색감과 정성스러운 모양새로 우리의 명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한과는 단순한 간식을 넘어,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 내려온 우리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오늘은 한과를 중심으로, 한국과 세계의 과자 역사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

🏺 과자의 기원: 과일에서 과자로
과자의 시작은 의외로 과일이었습니다. 『삼국사기』와 『가락국기』에 따르면, 수로왕릉의 제사 음식에 ‘과(果)’가 등장합니다. 이는 본래 과일을 의미했지만, 과일이 귀한 계절에는 곡식 가루로 과일 모양을 본떠 만든 음식이 대체품으로 사용되었고, 이것이 바로 과자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쳐, 나라 시대의 일본 음식 중에서도 한국식 조과의 흔적이 발견됩니다. 이는 삼국시대에 이미 과자 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죠.
🕯️ 고려시대: 불교와 함께 꽃핀 조과 문화
불교가 성행하던 고려시대에는 육식을 금하고 차 문화를 즐기는 풍조가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차와 함께 곁들이는 조과(造菓)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 연등회, 팔관회 같은 국가 행사나 왕의 행차, 결혼식, 제사 등에서 조과는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어요.
- 『고려사』에는 충렬왕이 원나라에 가서 세자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유밀과를 대접했더니 그 맛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 **‘고려병’**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하지만 과자의 사치가 심해지자, **명종 22년(1192)**에는 유밀과 사용을 금지하는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죠.

👘 조선시대: 집집마다 과자를 만들던 시절
조선시대에도 조과는 결혼식, 회갑잔치, 제사 등 중요한 행사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 당시에는 과자를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는 문화가 일반적이었고, 필요한 재료들도 가정에서 늘 준비해 두었습니다.
- 이 시기에도 유밀과, 강정, 산자, 엿, 전과 등 70여 종의 한과가 전해졌으며, 과일을 모방해 만든 과자라는 의미에서 **조과(造菓)**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 양과자의 등장: 서양의 달콤함이 들어오다
1884년, 조선과 러시아 간 통상조약 체결 이후, 서양 음식이 조선에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 손탁 여사가 정동구락부를 통해 서양 문화를 전파하면서, 양과자도 상류층 사이에서 연말연시 선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 1920년대 초, 한국 최초의 양과자점이 문을 열었고, 1940년대까지 서울에 140여 개의 양과자점이 생겨났습니다.
🌍 세계 과자의 역사도 궁금하다면?
과자는 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죠.
- 기원전 5세기, 인도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설탕이 전해지면서 과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 이후 그리스, 로마, 이집트로 퍼졌고, 1세기경 남유럽에서는 과자가 일상적인 간식으로 자리 잡았어요.
- 15세기 말,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설탕, 코코아, 커피 등이 유럽에 유입되며 과자의 종류와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 마무리하며: 과자는 문화다
과자는 단순한 간식이 아닙니다.
그 시대의 문화, 종교, 경제, 국제 교류까지 담고 있는 작은 역사서이자, 정성과 미의 결정체입니다.
오늘 우리가 즐기는 달콤한 한 조각의 과자 속에는 수천 년의 이야기가 녹아 있답니다.
📌 당신의 추억 속 과자는 무엇인가요?
어릴 적 먹던 강정, 명절마다 보던 유과, 혹은 첫 양갱의 달콤함까지—여러분의 과자 이야기를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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