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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 아우구스트 란트메서와 뉘른베르크법의 어두운 그림자

by axles 2025.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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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 낀 한 남자, 침묵으로 외친 저항 – 아우구스트 란트메서 이야기

📸 1936년 6월 13일, 독일 함부르크 조선소

수많은 노동자들이 나치식 경례를 하며 히틀러를 환영하던 그날,
한 남자는 팔짱을 낀 채 경례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우구스트 란트메서(August Landmesser).
그 순간을 담은 사진은 훗날 “나치 경례를 하지 않은 남자”라는 상징이 되었죠.


🧑‍🏭 나치당원이었던 그가 왜 저항했을까?

  • 1931년, 일자리를 얻기 위해 나치당에 가입한 란트메서는
    1935년 **유대인 여성 이르마 에클러(Irma Eckler)**와 사랑에 빠집니다.
  • 이 결혼으로 그는 나치당에서 제명되고,
    뉘른베르크법에 따라 결혼은 무효가 되었죠.
  • 하지만 그는 이혼하지 않았고, 가족을 지키려 했습니다.

🚫 경례 거부의 상징적 순간

  • 1936년, 해군 훈련함 진수식에서
    모두가 히틀러에게 경례하는 가운데,
    팔짱을 낀 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란트메서가 포착됩니다.
  • 이 사진은 훗날 디 차이트(Die Zeit) 신문에 실리며 전 세계에 알려졌고,
    양심적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 그 후의 삶 – 사랑과 저항의 대가

  • 1937년, 아내와 함께 덴마크로 도피하려다 실패하고
    ‘인종오염죄’로 고발되어 강제수용소에 수감됩니다.
  • 아내 이르마는 게슈타포에 체포,
    둘째 딸을 감옥에서 출산한 뒤 안락사 센터에서 살해당합니다.
  • 란트메서는 1944년 크로아티아 전선에서 실종,
    전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 가족의 기억과 역사적 논란

  • 사진 속 인물이 란트메서가 맞는지에 대해
    다른 가족들도 주장했지만,
    그의 딸 이레네 에클러는 확신을 가지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겼습니다.

📝 마무리

모두가 팔을 들던 그날,  
한 남자는 팔짱을 끼고 침묵으로 외쳤다.  
그의 저항은 총도, 구호도 없었지만  
역사 속 가장 강력한 ‘아니오’였다.

팔짱 낀 한 남자, 침묵으로 외친 저항 – 아우구스트 란트메서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과 뉘른베르크법의 어두운 그림자

🧑‍⚖️ 뉘른베르크법: 법으로 만든 차별

1935년, 나치 독일은 **‘뉘른베르크법’**이라는 이름으로 두 가지 악명 높은 법률을 제정합니다:

  1. 독일인의 피와 명예 보호법
    • 유대인과 독일인의 결혼 및 성관계 금지
    • 유대인은 독일 국기 사용 금지, 45세 이하 독일 여성 고용 금지
  2. 국가 시민법
    • 독일 혈통만이 시민권을 가질 수 있음
    • 유대인은 정치적 권리 박탈, 공직·전문직 진출 금지

이 법은 단순한 차별을 넘어, 유대인을 법적으로 ‘국민이 아닌 존재’로 규정하며
홀로코스트로 이어지는 제도적 기반이 되었어요.


🧍‍♂️ 히틀러에 맞선 사람들 – 침묵 속의 용기

히틀러의 독재에 저항한 인물들은 다양했습니다. 그들은 군인, 학생, 지식인, 노동자였고,
그들의 저항은 삐라 한 장, 폭탄 하나, 침묵의 행동으로 표현되었죠.

🔹 게오르크 엘저 – 고독한 암살자

  • 1939년, 히틀러 연설장에 폭탄을 설치
  • 히틀러는 13분 일찍 자리를 떠나 살아남음
  • 엘저는 체포되어 고문 후 처형

“전쟁을 막기 위해 필사의 각오로 행동했다.”

🔹 백장미 그룹 – 뮌헨대 학생들의 양심

  • 소피 숄, 한스 숄 남매가 주도
  • 히틀러의 범죄를 고발하는 전단지 배포
  • 체포 후 즉결처형, 마지막까지 양심을 지킴

“우리는 침묵하지 않겠다. 양심은 죽지 않는다.”

🔹 크라이자우 서클 – 지식인의 저항

  • 교수, 정치인, 종교인 등이 모여 히틀러 암살과 독일 재건 구상
  • 작전명 발키리의 기반이 되었으며, 대부분 처형

“민주주의는 제도보다 사람이다.” – 한스 페터스


📚 뉘른베르크법의 영향 – 차별에서 학살로

영향 내용

시민권 박탈 유대인은 독일 국민이지만 시민권 없음
경제적 고립 유대인 상점 폐쇄, 직업 제한, 재산 몰수
사회적 낙인 여권에 ‘J’ 표시, 이름에 ‘이스라엘’·‘사라’ 강제
이민 제한 출국 시 재산 90% 세금, 행선지 부족
학살로 연결 1941년부터 ‘최종 해결책’ 실행, 대량 학살 시작

📝 마무리

법으로 만든 차별은 침묵 속에서 자라나고,  
침묵을 깬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외쳤다.  
히틀러에 저항한 이들의 용기는,  
지금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히틀러에 저항한 사람들과 뉘른베르크법의 어두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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