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 시대를 엿보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시간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 중 하나인 안경이 조선 시대에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고 계신가요? 처음에는 '게눈깔'이라고 불리며 부정적으로 여겨졌지만, 개항 이후에는 부와 위엄의 상징으로 그 위상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지금부터 조선의 안경 변천사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 최초의 안경 착용자와 도입 시기
우리나라에서 안경을 최초로 착용한 사람은 임진왜란 직전(1590년경) 일본 통신사로 다녀온 **김성일(金誠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학자들은 안경이 이보다 조금 더 일찍, 또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 《지봉유설》의 기록: 선조 때의 실학자 이수광은 그의 저서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안경에 대해 기술하며 새로운 문물로 소개했습니다.
- 임진왜란의 목격담: 임진왜란(1592~1598) 당시 명나라의 심유경과 일본의 승려 현소(玄蘇; 겐소)가 휴전 회담을 할 때,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많아 작은 글씨를 읽을 때 안경을 끼고 문서를 보았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 정조의 고민: 《정조실록》 23년(1799) 7월 기사에는 정조가 시력이 나빠져 경전의 문자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황을 토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정조의 이 발언을 통해 안경이 임진왜란 무렵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으며, 비록 민간에 퍼졌더라도 조정에서는 왕의 위엄 때문에 착용을 꺼리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나의 시력이 전보다 못해져서 경전의 문자는 안경이 아니면 알아보기가 어렵지만 안경은 200년 동안 (조정에서) 처음 있는 물건이므로 이것을 쓰고 국사를 처결한다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 '게눈깔'이라 불리던 안경의 초기 인식
초기 안경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선은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 별명: 게눈깔: 임진왜란 때 일본인과 함께 온 서양 사람들이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이 툭 튀어나온 게 눈 같다고 하여 우리 조상들은 안경을 **'게눈깔'**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 서양과의 대조: 서양에서는 안경을 위엄의 상징으로 여긴 반면, 조선에서는 웃어른 앞이나 조정에서 안경을 끼는 것을 불경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실제 비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구한말 김택영이 쓴 **《한사계(韓史稧)》**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헌종(재위 1834~1849) 때 임금의 외숙 조병귀가 눈병이 있어 안경을 끼고 헌종을 알현했다가 핀잔을 듣고 나서 두문불출했다. 헌종이 ‘외숙의 목이라고 칼이 들지 않을꼬’라고 했더니, 조병귀는 먹고 자는 것을 잊은 채 고민하다가 자결하고 말았다."
심지어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했던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마저도 고종(재위 1863~1907)을 만날 때는 안경을 벗고 알현했고, 그가 벗어놓은 안경이 없어지기도 했다는 일화는 당시 안경 착용에 대한 엄격한 사회적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 안경의 대중화: 위상 변화와 새로운 유행
이처럼 안경 착용을 부정적으로 여기다 보니 자연히 안경을 사용하는 사람도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안경의 위상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 안경 가게의 등장: 정조의 아들 순조(재위 1800~1834) 때는 한양에 안경 가게가 생겨나 여러 가지 안경을 팔았다고 합니다. 이는 안경이 일반 백성들에게도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 개항 이후의 변화: 안경이 보편화된 결정적인 계기는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이 안경을 쓰고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부터입니다. 외국인들의 영향으로 안경 착용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 '부와 위엄의 상징'으로: 안경을 쓰는 것을 창피하다고 생각할 때는 안경집을 도포자락에 감추고 다녔으나, 외국인들의 영향으로 안경 착용이 부와 위엄의 상징으로 바뀌자 유행이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안경을 허리춤에 매달아 자랑스럽게 다니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궁중의 궁녀들까지도 안경을 쓰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안경은 단순히 시력을 교정하는 도구를 넘어, 조선 시대의 사회적 통념과 외래 문물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역사적 상징이었습니다. 부정적인 시선을 극복하고 현대의 필수품이 되기까지, 안경이 겪은 조선의 역사는 매우 다이내믹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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